수신: 아기 아빠
발신: 아기와 함께한 지 589일째 된 사람
제목: 육아 중간보고서 – “잘 지내시나요, 아빠?”
안녕하세요.
이곳은 매일이 새롭고, 긴장감 넘치며,
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곳… 바로 ‘육아 현장’입니다.
오늘 하루도 고요한 전쟁을 치르고 무사히 밤을 맞이했습니다.
당신이 “다녀올게~” 하고 문을 나선 그 순간부터 전투 시작.
아기 기상 시간: 오전 6시 3분
저의 기상 시간: 오전 6시 4분 (강제 기상)
오늘은 다행히 새벽 기상은 없었고요,
첫 기저귀 교체는 무난하게 통과.
단, 이유식 시간엔 미지근한 죽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.
그래서 바나나를 꺼냈더니 표정 급반전.
이유식은 거절했지만 바나나는 열정적으로 드셨습니다.
🧠 인지 발달 상황
현재 아기는 말문이 트이는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.
주요 단어는 다음과 같습니다:
“엄마” → 만능어. 부르면 엄마가 오니까 사용 빈도 최고.
“까까” → 진지하게 요구함. 반응 없으면 반복 5회.
“응/아니” → 감정에 따라 바뀌는 다이내믹 대답.
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‘엄마’인데,
문제는 이게 물 달라, 이거 해줘, 이유식 싫어,
심지어 그냥 “나 지루해”까지도 전부 ‘엄마’ 하나로 통일돼 있어요.
정말 멀티 기능 단어입니다.
💪 신체 발달 보고
요즘은 걷는 걸 넘어서 뛰는 시도까지 합니다.
소파 위에서 점프하려다 낙법 실패 → 울음 → 안아줌 → 웃음
이 패턴이 오늘만 3번 있었어요.
문 열기, 서랍 열기, 침대 기어오르기 시도 중이며
주방 출입은 더 강력한 방어벽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.
그리고 최근엔 엄마를 계단 삼아 올라타는 기술을 익혔습니다.
의외로 무릎을 디딜 때 압력이 상당합니다… 아주요.
🛌 수면 패턴 보고
낮잠은 오전 11시부터 약 40분,
오후에 1시간 10분 정도 잤고요,
잠들기까지 “책 더” 요청이 2회,
“안 자” 고집이 1회 있었습니다.
밤잠은 9시쯤 성공.
잠자기 전 ‘누가 불 껐나’, ‘왜 인형이 저기 있지’,
‘이불은 왜 이 각도지’ 등 다양한 검수 과정을 거쳐
잠들기 직전까지도 활발한 뇌활동을 보였습니다.
특이사항:
잠결에 눈 비비며 “아빠?”라고 부름 (← 하지만 부르는 것만큼 아빠는 없음)
엄마는 옆에 있었지만 호출 안 됨 😢
🍽️ 식사 및 간식 리포트
아침: 미역죽 + 사과퓨레 → 미역은 바닥에, 사과는 얼굴에.
점심: 두부전 + 고구마무스 → 고구마만 선별 흡입.
간식: 요거트 먹다가 티셔츠 전체가 요거트색으로 변신.
저녁: 유아용 카레 → 손으로 퍼먹음. 엄마는 말리지 않음. 체념했음.
이제는 숟가락보다 손을 더 잘 쓰고,
수저를 들긴 하는데 목적지는 항상 코 옆입니다.
💬 커뮤니케이션 & 감정 표현
“싫어”가 입에 붙었어요.
기저귀 갈자 → 싫어
양치하자 → 싫어
장난감 치우자 → 싫어
하지만 "안아줘"는 언제든 OK.
요즘은 감정 표현도 풍부해져서
혼자 박수 치고, 거울 보면서 웃고,
엄마 쓰다듬어주는 척도 해요.
(정말 감동적인 순간인데, 머리카락 당길 땐 감동 상실)
🧼 기타 특이사항
오늘도 휴지 다 풀어헤침
콘센트 근처 접근 시도 3회
화장실 문 열고 들어오더니 양변기 물 내리고 박수
장난감보다 리모컨, 신문지, 택배박스에 더 큰 애정
🫠 엄마의 상태 보고
식사: 오전엔 바나나 반 조각, 점심은 아이 이유식 남긴 거
샤워: 오후 3시에 급히. 머리는 감지 못함
커피: 오전에 내렸으나 반도 못 마심
성인과의 대화: “택배요~” 기사님과 5초
하지만 아이가 잠들고 나면 그 모든 피로가 조금씩 녹아요.
오늘도 아이가 “엄마~” 하면서 안겨준 그 순간이,
진심으로 오늘 하루를 버틸 수 있게 해줬습니다.
✏️ 결론 및 지원 요청
아이 상태: 매우 활발하며 건강함
엄마 상태: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선 어딘가
→ 지원군 요청: 주말 아빠 FULL TIME 근무 희망
바라는 바:
아빠가 목욕 담당
식사 후 정리 1회만이라도
엄마가 30분 혼자 커피 마시는 시간
그리고, “고생 많았어” 한마디면 됩니다
감사합니다.
이상, 아기 총관리자兼 엄마의
작지만 진심 가득 담긴 중간보고서였습니다.
📝 오늘 하루도 서로 수고 많았어요.
아기와 엄마, 그리고 아빠까지.
이 전쟁 같은 하루 끝에,
따뜻한 말 한마디가
참 오래 기억에 남더라고요.
✉️ 이 글은 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엄마들에게 바칩니다. ㅎㅎㅎ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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